헌재, 가까스로 합헌 결정 파장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 현행 의료법 27조 1항은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제외한 치료영역, 즉 ‘대체의학’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수많은 환자가 대체의학으로 몰렸고 그중 상당수는 “치료효과를 봤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가 29일 해당 조항에 대해 형식상 ‘합헌’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위헌’과 맞먹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대체의학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특히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던 헌재가 위헌 쪽에 더 가깝게 다가선 것은 큰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정부와 국회가 의료시스템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측의 주장이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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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결정권에 어긋나” vs “국민 건강을 위한 공익 우선”=이번 위헌법률심판의 대상이 된 것은 ▶구당(灸堂) 김남수(95)옹 제자의 침·뜸 시술 ▶혈자리 자석 부착 시술(자기요법) ▶온열치료기 등을 활용한 침술 ▶중국 침구사 자격 취득자의 시술 등이다. 이 중 김남수옹의 제자인 김모씨는 1000여 명의 환자를 상대로 한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법(무면허 의료행위 처벌)과 현실(대체의학)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에 대해 조대현 재판관 등 4명은 “모든 국민은 헌법상 자기결정권을 갖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국민 스스로가 경제성과 접근성을 고려한 최선의 의료행위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때문에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해(危害) 발생 가능성이 낮은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국민의 의료선택권과 비의료인의 직업선택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김종대 재판관은 “자신의 몸에 생긴 질병을 어떤 방법으로 치료할 것인지는 궁극적으로 국민 본인이 선택할 문제”라고 했다.
반면 합헌 의견을 낸 이강국 소장 등은 “의료제도는 국민 건강의 보호증진을 위한 것이므로 국가로부터 의료에 관한 지식을 검증받은 사람에게 의료행위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봤다. 아울러 “비의료인의 의료행위 전면 금지는 국민 보건에 관한 중대한 공익을 위한 것으로 이에 따른 (비의료인 등의) 기본권 제한은 과잉금지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합헌 쪽도 정책적 해결 제안=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도 “대체의학 시술자 또는 비의료인들에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말했다. 헌재 관계자는 “문제가 된 의료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는 않지만 새로운 정책 마련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더욱이 김희옥 재판관은 합헌 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통해 “국가는 국민 보건을 위해 제도 변경의 필요성이 있으면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 범위 내에서 제도권 의료행위 이외의 치료방법을 적극적으로 연구해 이를 의료행위에 편입하거나 또는 국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못 박았다.
이러한 헌재의 입장 변화가 재판이 진행 중인 의료법 위반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현재 대법원에는 대체의학을 신봉하는 이들에게 ‘현대판 화타’로 불리는 장병두(95)옹 사건이 계류돼 있다.
전진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