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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의 표적

나비채 2011. 2. 18. 15:52

데미안 - 헤르만헤세 저
 
 
부드럽고 밝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좁은 집을 벗어나면 어둡고 침침한 하녀와 직공들의 집에서 싱클레어는 한 집에서 두 가지의 세계를 경험하며 산다. 어둡고 무시무시한 그곳은 신앙적 양심에 죄책감을 느끼는 아버지, 어머니의 집보다 흥미롭고, 매혹을 느낄만한 장소였지만 싸움과 다툼이 빈번할 때면 신앙심 깊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 달려갈 수 있기에 다시 편안함을 되찾곤 한다.

  그 마을엔 싱클레어보다 3살 많은 양복점 아들 프란츠 크로머에게 뜻하지 않게 마을 과수원의 좋은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어른 흉내내기를 좋아하고 가난했던 프란츠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말을 빌미삼아 2마르크라는 엄청난 돈을 요구하면서 싱클레어는 한 주간이 1년같이 느껴지는 기나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그때 싱클레어는 라틴어 학교를 다니던 중 데미안이라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전학오면서 싱클레어에게는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크로머와 사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데미안은 보통아이들과 달리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할 줄 알았고, 때로는 선생님의 의견에 반박도 할줄 알았다.

  어느 수업시간,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카인은 일반적으로 선생님이 설명하는 동생을 죽인 나쁜사람이 아니고, 용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고, 아벨은 그 용감함에 두려워하는 겁쟁이라고 말해 주었다. 아벨과 같은 사람들은 그러한 무서움이 카인이 이마에 흉한 표적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고 핑계대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사실에 영항을 받은 싱클레어는 데미안처럼 행동하고 종교에 대해 좀 더 개인적이고, 유희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나지움의 학교에 들어가게 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소년같지 않고 어른스럽게 행동했고, 독특한 생각을 했던 것처럼 혼자 사색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를 즐겼다. 이러한 행동은 어렸을 때 프란츠 크로머와의 사건이후로 고통과 외로움을 가져다 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술을 마시며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만 그의 독특한 생각과 남다른 행동은 그들과 조차 어울릴 수 없었고 퇴학 위기까지 당한다. 하루하루 외로움을 곱씹으면서 데미안이 얘기해준 카인은 왜 용감한 사람이었고, 그 표적은 또 무엇인지 생각하며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자꾸 불러내었다.

  어느 봄날 공원에서 본 아름답고 우아해 보이는 여인을 보게 된다. 그때 단 한 번밖에 보지 않았지만 싱클레어는 잊을 수가 없었고, 그 여인을 닮은 그림을 그려본다. 영리해보이고, 소녀같았지만 소년같기도 하고, 슬퍼보이면서도 아름다운 그 그림을 보면서 그는 데미안을 떠올린다.

  18세가 된 싱클레어. H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데, 어느 날 늦은 저녁 쾌활한 젊은이들 소리가 들리는 술집에서 친구 데미안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엔 한번도 본적 없는 데미안의 어머니를 보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예전에 봤던 그 아름다운 여인과 너무 같았고, 오히려 더 여성스럽고 우아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을 보며 양면성을 느낀다. 훌륭한 어머니로서, 아름다운 여인으로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던 세계에 전쟁이 찾아왔다. 데미안은 자기 나라를 위해 자신같은 사림이 필요하다며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싱클레어도 따라 군에 들어가지만 싱클레어는 큰 부상을 입고 데미안은 불러도 다시 올 수 없는 죽음의 나라로 떠나면서 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 책은 저자의 삶을 바탕으로 그려놓은 소설로써 인물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주인공 싱클레어를 보면서 내안에 있는 이분적인 마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 양심적인 삶과 쾌락적인 삶에서 오는 수많은 갈등과 번민. 이에 데미안이 그 해결자로서 싱클레어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데미안 또한 이른 나이에 전장에서 죽게 되어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다. 데미안은 사고면에서 참 독특하고 독창적이다. 카인을 보는 관점이 전혀 달랐다는 자체가 지나치게 옳게, 바르게 살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삶이 곧 내 삶인 것처럼 행세한 것보다 진취적이다고 본다. 하지만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탈종교적인 생각이 싱클레어에게 좋은 영향만 미쳤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에게 외로움과 탈선, 방종을 주어서 싱클레어를 고뇌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살아가는 것. 이것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남과 더불어 살아 갈 때 자신이 삶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에게 실수만 안했다면,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렸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표적을 가진 카인으로 살았을까? 외로움과 방황으로 삶을 살지 않았을 게다. 내 마음에 이분적인 마음이 있다고 했다. 그 중에서 한 길을 선택하자면 아벨의 길을 택하겠다. 그렇지만 보다 충실히 주위 사람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살고 싶다.